📖 본문 말씀: 누가복음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 서론: 하나님과 재물 사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통해, 바리새인들의 마음 중심을 직면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돈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적인 가치에 사로잡힌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그들은 조롱하듯 비웃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삶은 이미 사람의 인정과 물질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겉모습이 아닌 중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따르고 경건을 추구하지만, 실상은 사람들의 칭찬과 사회적 위치, 재물을 향한 욕망이 우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의롭다 칭함을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미움을 받는 삶. 예수님은 그 내면의 모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스스로를 비춰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의 인정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 앞에서 높임받고자 하는 그 마음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도 귀한 것인가? 이 질문을 깊이 묵상해야 할 때입니다. 신앙이란 겉모습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 앞에 정직하게 서는 용기입니다.
📖 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16:16)
율법 시대가 끝나고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대 구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방식이 외적 규범에서 내면의 믿음으로 옮겨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쌓아온 율법주의적 전통에 안주하며, 하나님의 새 일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의 본질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율법의 한 획이라도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6:17). 문제는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자신들의 유익에 따라 해석하고 왜곡한 사람들의 위선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외운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참된 믿음과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수단 삼아 자신을 드러내고 남을 판단하며 살아가는 삶은, 복음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삶입니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자랐고 성경도 많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의 사정을 외면했고, 성공한 사람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말씀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 바리새인의 위선, 예수님의 직면
예수님께서 갑작스레 이혼 문제를 언급하신 것도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혼을 쉽게 허용하는 문화가 퍼져 있었고, 특히 바리새인들조차도 율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며 이혼을 정당화했습니다. 음식 하나 태웠다고,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를 내치는 일들이 허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왜곡한 결과였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며, 관계의 회복과 거룩함을 위한 기준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기 욕망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삶의 이중성과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단호히 지적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경 구절을 자신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불의한 재물 사용, 이기적인 결정, 남을 정죄하는 말들까지도 "말씀에 근거했다"는 명분으로 포장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위선적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의 마음을 아신다."
💡 부자와 나사로 비유의 핵심
이어서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부자는 복받은 인생처럼 보였고, 거지 나사로는 저주받은 인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모습은 반대였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았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이 비유는 단순한 부자-가난한 자의 대비가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가’,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는가’, 그리고 ‘이웃에 대한 태도’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풍요에만 몰두하며, 나사로의 고통에 철저히 무관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죽음 이후에도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멀어진 채,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도 경고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얼마나 자주 듣고 있는가보다,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듣고도,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한 밭과 같습니다.
✨ 오늘 말씀의 핵심 메시지 3가지
-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라
외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아 보여도, 내면의 중심은 하나님과 멀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재물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만족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성경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라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화려하게 살았는가보다, 말씀에 얼마나 순종했는가를 보십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어야 하며,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과 순종이 진짜 믿음을 증명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 복음을 전할 기회를 미루지 말라
지옥에서 고통받던 부자는 형제들에게 경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답합니다.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복음은 지금 전해야 합니다. 내일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오늘, 사랑하는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그를 이끄는 일에 순종해야 합니다.
🕊 마무리 묵상
하나님 나라의 참된 부는 재물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말씀 위에 세워진 삶이 참된 복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 마음을 비추고, 진실한 신앙과 사랑의 실천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내 마음이 물질이 아닌 주님을 향하게 하소서.
이 땅의 성공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게 하소서.
주의 말씀대로 살며,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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