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신 예수 – 침묵 속에서 완성된 구원의 이야기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고, 어떤 구절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마태복음 27장에서 예수님께서 총독 빌라도 앞에 서신 장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은 분명 아무 죄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거짓 고발과 조롱, 억울함 속에서도 한마디 변명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은 무기력함이 아니라 순종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억울한 일, 누구나 겪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살면서 억울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오해했을 때, 사실이 왜곡되었을 때, 내가 옳음에도 불구하고 비난받을 때 우리는 억울함을 느낍니다. 그런 순간에는 누군가 내 입장을 알아주고 변호해주기를 바랍니다. 억울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본능적인 감정입니다.
저 역시 최근에 한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던 길, 지하주차장에서 한 여성 운전자가 반대 방향으로 진입하더니 “이쪽이 더 빨라요”라며 반말로 이야기했습니다. 도로의 선은 명확히 정해져 있었고, 규정을 지킨 쪽은 저였지만, 오히려 제가 당황하고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목회자라는 위치 때문에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자 침묵했지만, 억울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침묵이 떠올랐습니다. 그분께서 겪으신 억울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거짓 증언, 무고한 고발, 조롱과 모욕, 침 뱉음과 폭행이 이어졌습니다. 인간이라면 결코 참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순간을 침묵으로 감당하셨습니다. 그 침묵의 의미는 지금 우리의 삶에도 깊은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예수님의 재판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마태복음 27장 11절부터 14절은 예수님께서 총독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 고발을 일삼았습니다. 처음에는 ‘신성모독’이라는 종교적 죄목을 주장했지만, 로마 제국은 종교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죄목을 정치적인 혐의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예수가 백성을 미혹한다.
-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지한다.
-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 칭한다.
이 모든 고발은 사실이 아닌 억지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무죄임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따르면, 그는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거듭 밝힙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헤롯에게 보내지만, 헤롯 역시 예수님의 침묵 속에서 아무 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조롱만 한 채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냅니다.
빌라도는 갈등에 빠집니다. 민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며 흥분하고 있었고, 그는 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결국 죄인 바라바는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침묵하셨습니다.
왜 침묵하셨을까?
왜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말씀 한마디로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셨던 분이, 왜 이 억울한 재판 앞에서는 침묵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의도된 결단이자,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고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침묵이 곧 십자가로 가는 길이었고, 그 길이 곧 인류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함을 해명하기보다는,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하여 그 침묵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침묵은 사랑의 언어였고, 순종의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침묵 앞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이 장면을 묵상할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 나는 빌라도처럼 진리를 알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 나는 종교 지도자들처럼 내 유익을 위해 진리를 왜곡하고 누군가를 정죄하진 않았는가?
- 나는 무리들처럼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았는가?
예수님의 침묵은 바로 이런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외면하고, 변명조차 못하는 죄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침묵으로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침묵은 무기력이 아니라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 침묵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침묵은 가장 강한 선택이었습니다. 말보다 더 큰 진리, 해명보다 더 큰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 마가복음 10장 45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 외에는 그 어떤 거짓 고발에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믿음의 순종,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침묵은 사랑의 가장 깊은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말로 표현하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말보다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침묵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희생이라는 가장 깊은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억울함 속에서
우리도 억울함을 경험합니다.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오해와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감정을 토로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분은 억울함을 풀기보다, 구원을 이루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 침묵에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조용히 순종하는 것. 그 침묵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침묵을 통해 순종을 배우는 삶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복음은 단순히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존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만이 억울함 속에서도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분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 야고보서 1장 20절
우리가 침묵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억울함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고난 주간과 침묵의 영성에 대한 묵상
고난 주간(Holy Week)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걸으신 마지막 일주일을 기억하는 시기입니다. 교회 전통 안에서 이 시간은 단지 역사적 사건을 되짚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고 내면을 돌아보는 깊은 영적 여정입니다.
✝️ 침묵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깊은 영성이다
예수님은 고난 주간 내내 많은 고통과 억울한 상황 앞에서 말 대신 침묵을 택하셨습니다. 그 침묵은 무기력함이나 굴복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향한 전적인 순종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마태복음 26:39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 흘리며 기도하신 그 순간부터,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하셨고, 그 결단은 침묵이라는 영적 언어로 나타났습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는 태도입니다.
🕯️ 고난 주간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침묵의 시간’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말, 정보, 판단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주간은 이 소란스러운 삶 속에서 ‘침묵’을 회복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고난 주간의 침묵은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침묵은,
-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
-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 내 안의 죄와 교만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게 하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 예수님의 침묵은 고난을 받아들이는 영적 용기였다
우리는 고난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억울한 상황에선 설명하고 싶고, 고통 앞에서는 소리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으셨습니다.
그 침묵 속에는 담대한 용기와 확신,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고난조차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 고난 주간, 말보다 침묵으로 하나님 앞에 서자
고난 주간은 말로 복음을 설명하기보다, 삶으로 복음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 나는 왜 십자가 앞에 서 있는가?
- 내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 예수님의 침묵처럼, 나도 하나님의 뜻에 침묵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침묵으로 머무를 때, 우리는 비로소 십자가의 은혜를 진심으로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 마무리 묵상: 고난 속에서 말하기보다 ‘묵상하는 신앙’
고난 주간은 신앙의 내면을 정화할 기회입니다. 예수님의 침묵을 묵상하며, 우리 안에 있는 말들을 잠시 멈추고 그 침묵 속에 계신 주님의 마음을 느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외쳐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주님처럼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신앙이 더 큰 힘이 됩니다.
이 고난 주간, 나의 말보다 주님의 침묵을 더 깊이 묵상하고, 그 침묵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나님,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침묵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 침묵 속에 담긴 주님의 사랑과 순종을 마음에 새기게 하소서.
억울한 순간에도 변명보다 순종을, 감정보다 믿음을 선택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침묵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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